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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05 22:07

해신당의 전설....남근숭배 문화의 강원도 삼척

글쓴이 : 관리자

A4지를 6장쯤 이어 붙여야만 할 정도로 꽤 큰 지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녀온 그 곳은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랬으니 그곳에서 숨 막힐 정도의 정적과 한가로움을 느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바닷바람을 쏘이기 위해 빨래처럼 줄지어 널어놓은 오징어와 백사장 건너 저 멀리로 잔잔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만 보일 뿐 그 흔한 갈매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늘 도시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탓일까, 갑자기 닥친 그 적막감에 짧은 순간 당혹감을 피할 수 없었다. 정말로 이곳이 관광지가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들어오는 입구에서 '해신당 공원'이라는 표지를 보았으니 분명 길을 잘못 찾은 건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차장 한쪽에서 말린 오징어며 미역을 파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지만 오징어 사라는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한 채 수줍은 듯 낯선 방문객을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가니 비로소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났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몇 명의 관광객과 오징어를 맛보고 가라며 다리를 떼어 주는 아주머니, 그리고 마을 노인 몇 사람이 좀 전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제야 우리가 잘못 온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 작은 어촌마을의 여유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시사람의 삭막함이 내게도 뿌리 깊이 박혀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공원으로 오르려는데 입구는 물론 이곳저곳 눈길 돌리는 곳마다 특이하게도 나무로 깎은 거대한 남근들이 호위병인 양 서 있다. 무슨 연유일까, 이 한적한 어촌 마을에 남근 조각들이 서 있으니 말이다. 해신당이라는 공원 이름과 남근 조각.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 해신당 공원 입구에 선 남근 조각상

궁금증을 안고 몇 계단 위로 올라가니 바다로 나가는 길이 열려 있다. 해안선 경비를 위해 쳐 놓은 철책과 철조망 사이로 열린 조그마한 쪽문을 통해 바다로 나가니 좀 전의 조용하던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검은 바위와 하얀 거품을 쏟아내며 힘차게 달려드는 동해 바다의 위용이 시원스럽게 드러난다. 비로소 바다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절로 감탄이 솟아났다.

공원을 장식하고 있는 남근 조각상은 잠시 잊은 채 이곳에 서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힘차게 몰려와서 하얀 물거품을 남기며 바위를 때리고 사라지는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단박에 날려버릴 수 있을 듯하다. 그저 거무튀튀한 바위 덩어리와 속절없이 부서지는 파도뿐이건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도대체 바다가 가진 그 알 수 없는 매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 바닷가 풍경

▲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한 파도

한참 동안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 여인의 상이 서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높은 파도 때문에 쉽게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를 바라보며 애타는 듯 손짓을 하고 있는 여인상. 무슨 사연일까? 분명 이 공원의 남근상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바다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처음 자리로 돌아와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사당이 하나 있다. 이 공원의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도 해신당이 아닐까 싶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인 듯 문은 굳게 잠겨 있는데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고운 외모의 앳되어 보이는 처녀상이 벽면에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제사상이 놓여 있다. 제사상은 처녀를 위한 것임이 분명하리라. 이쯤 되면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에 이 공원과 처녀상, 그리고 공원을 가득 채운 남근 조각상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설명이 쓰여 있다.

▲ 앳된 처녀상이 모셔진 해신당

아주 오랜 옛날, 결혼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이른 봄날 바다로 나갔다. 처녀는 해초를 뜯기 위해 총각이 운반해 주는 배를 타고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내렸다. 총각은 다시 실으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일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게 일어서 바위가 물에 잠기게 되자 처녀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한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위령제를 지내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을 제삿날로 정하여 제사 1주일 전부터 나무로 실물 모양의 남근을 여러 개 만들어 메어 달고 제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내용이 다소 황당하다. 게다가 죽은 처녀를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깎았다니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경을 칠 불량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납게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지척에 있는 마을을 두고 오도 가도 못하며 애처롭게 살려달라고 외치다 죽어갔을 처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오는 듯했다.

▲ 바다 한 가운데 서 있는 처녀상

언덕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따라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꽃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대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흉측하다고도 느낄 수 있는 남근상과 아름답고 섬세한 꽃밭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 부조화조차도 어쩐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언덕을 따라 공원 정상 부근에 이르면 더욱 많은 남근 조각들을 볼 수 있는데 매년 이곳에서는 남근 깎기 대회가 열리고 입상작들을 공원에 전시해 놓는다고 한다. 발걸음 내딛는 곳, 눈길 돌리는 곳 어디에도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선 남근 조각들을 볼 수 있지만 전혀 외설스럽다거나 흉측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근'이라는 주제로 저렇게도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 공원을 가득 채운 남근 조각들

▲ 남근을 주제로 만든 다양한 조각상 중 하나

공원 정상에는 삼척민속어촌전시관이 있다. 다소 의외다. 이런 외진 곳에 전시관이 있다니 말이다. 그러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배 모양의 입구를 통해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니 그 내용이 제법 알차다. 이런 한적한 어촌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의 이미지와는 달리 전시품 하나하나, 전시내용 하나하나가 제법 고민하고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민속전시관이라는 이름답게 어촌 생활 모습을 담은 풍경과 출어를 앞두고서 해야 할 금기사항 등은 다른 전시관과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예상 외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삼척어촌민속전시관 내부

그런데 '해신당 공원'과 그에 얽힌 전설 때문일까, 바다나 어촌 생활과는 무관한 성민속전시실이 나타난다. 세계 각국의 남근이나 여근 조각들, 그리고 성 관련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에 왜 이러한 전시실이 있지?'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느껴진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멀리 발 아래로 웅장하게 펼쳐진 동해 바다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하늘 중턱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광경만으로는 어느 이름난 외국의 관광지도 부럽지 않을 듯싶다. 하늘은 또 어찌나 높고 푸른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의 더러운 먼지가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느낌이다.